우선 리뷰를 시작하면서, 저자에게 매우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늘 가슴 한켠에 사회정의를 위해 뭘해야 할텐데라는 부채의식이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안주하고 싶은 마음, 두 가지의 저울질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으면 꼭 용기를 내주세요’라는 문장에서 한쪽으로 확 기울어지는 제자신을 봅니다. 아마도 이 책을 읽었거나, 저자의 다른 책들을 본 사람들은 이해하실겁니다. 이 마음을요.

이 책은 천안함 사건 폭침에서 살아남은 58명의 군인들이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기억이 가물가물할거 같은데요..

“천안함 피격 사건은 2010년 3월 26일에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PCC 772 천안이 조선 인민군 해군 잠수함의 어뢰에 의해서 격침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 해군 장병 40명이 사망했으며 6명이 실종되었다.”…(중략).. 폭침 당시 천안함에는 전사한 46명과 함께 이 설명에서 언급되지 않은 58명의 생존장병이 함께 타고 있었습니다..(중략)..다양한 정치적 입장에서 천안함 사건을 심도 깊게 다룬 책이 여럿 출판되었지만 생존장병의 경험은 아예 배제되거나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되기 일쑤였습니다. 생존장볍의 목소리가 전면적으로 부각된 것은 사건이 터지고 8년이 지난 2018년 <천안함 생존장병 실태조사>가 진행되고 그 결과가 사회적으로 공론화된 이후였습니다.

p22

세월호 사건에서도 그렇고 천안함 피격 사건에서도 그렇고 살아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대한 존재감은 전무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생존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생생한 그들의 현 상황을 보고하며 공론화했습니다.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는 전쟁이나 자연재해같이 생명이 위협받는 극심한 외상을 경험한 이후 생겨날 수 있는 불안장애 중 하나이지요. PTSD 환자는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반복적으로 트라우마 사건이 생각나서 계속 정신적으로 재경험하게 됩니다. 그 고통스러운 회상의 경험을 피하려 트라우마 사건을 연상시킬 수 있는 모든 것을 최대한 회피하게 되고, 그런 자극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무감각해집니다. 그 과정에서 자율신경계가 과도하게 각성되어 잠을 자지 못하고 쉽게 놀라는 것과 같은 불안 상태가 계속되지요.

p37

무엇보다도 PTSD라는 진단명이 오늘날처럼 널리 사용되기 위해서는 트라우마 생존자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나오는 것이 절실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힘겨웠습니다. 예를 들어 군인에게 PTSD는 나약함의 증표처럼 여겨졌습니다..(중략)..그들은 용맹한 영웅이 아니라 공포에 굴복한 비겁한 군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중략)..그러한 조건에서 트라우마 생존자인 군인이 자신의 경험과 증상을 나누기는 어려웠습니다. 이 상황은 1960년대 전 세계적인 반전운동과 함께 참전 군인의 상처에 주목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정치적 운동이 진행되면서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p40

천안함 폭침을 경험한 생존장병 중 일부가 천안함 청소를 하겠다고 자원한 사람이 있었고, 결국 그 장소가 주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하루 만에 그만두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는 절대적으로 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위에 설명했지만 PTSD 증세를 활성화시키는 트리거를 주기 때문이지요. PTSD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안전감입니다. 플래시백을 경험할 상황에 노출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오히려 촉발하게 한 셈입니다.

수전 손택은 “에이즈와 그 은유”에서 “환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비하한다는 고통”이라고 말합니다. 생존장병 중 71.4%가 ‘신체적 외상이 없어서 군의관이 내 고통을 엄살로 생각한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라고 말했으며, 76.2%가 ‘신체적 외상이 없어서 동료가 내 고통을 엄살로 생각한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장병들 중 68.2%는 ‘정신과에 가면 관심병사로 찍힐 것 같아서 진료를 받지 못한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p63

생존장병 58명 중 44명이 직업군인이었습니다. 그러니 군에서 지시하는대로 움직여야 했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었을겁니다.

연구에 참여한 생존장병 모두가 ‘폭침의 책임을 생존자에게 돌리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라고 답했으며, 그중95.5%가 군에서 ‘패잔병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같은 배를 타고 있다가 사망한 46명의 장병들은 화랑무공훈장을 받고 영웅적으로 산화한 존재가 되었지만, 그 시간 같은 배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다가 살아남은 58명의 장병은 낙인과 함께 살아야 했습니다.

p93

이 책에서 알게 된 기막힌 사례가 있어요. 바로 전 보훈처장 피우진씨의 일입니다. 그녀는 여군 훈련소 중대장, 특전사, 항공단, 헬기조종사,육군항공학교에서 만기 전역한 분입니다. 여군을 장식물처럼 취급하는 폭력적인 군 문화에서 치열하게 맞서 싸운 분이지요. 2002년 유방암 진단을 받았는데 수술보다는 진급 심사에서 병에 걸리면 낙천 사유가 되는 것이 더 큰 걱정이었다고 합니다. 수술도 미루었지만 진급에서 누락되자 암조직이 없는 오른쪽 유방까지 제거하고 싶다고 했다는군요. 그녀는 직업상 백해무익한 가슴을 없애고 싶다고 의사에게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2005년 유방이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되어 항공 조종사 자격을 박탈당합니다. 군인사법상 양쪽 유방 절제는 심신장애 2급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강제 퇴역 처분을 받게 되었다네요.저자는 이를 두고 군대의 ‘능력 있는 몸’ 이데올로기가 소수자에게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런 군대 문화에서 정신적으로 돌봐야 할 상태라는 것은 군인으로서 쓸모가 없는 것이기에 감히 아프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을겁니다. 따라서 PTSD 증세를 숨기고 존재감마저도 숨기면서 고통스럽게 생존병사들은 삶을 유지하고 있었겠지요.

트라우마 생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생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고 답해주고 그 고통을 비하하는 사람들에 맞서 함께 싸워주는 이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생존자의 몸속에서 고통의 에너지로 머물던 사건은 언어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p259

며칠 전 우연히 미국 9.11테러사건때 투입되었던 소방관들, 경찰관들의 증언 다큐를 봤습니다. 당시에는 영웅스러운 행동으로 추앙을 받았지만 그 이후 PTSD, 건물 잔해에 섞여있는 유해물질 흡입으로 인한 각종 증세들로 고통받는 그들에게 국가가 해준 것은 없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지요. 눈덩이처럼 불어난 병원치료비, 약물치료비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법안 발의를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로비에 나선 그들의 이야기를 보며 분노가 일었지요. 정치적 이용꺼리가 없을 때는 존재감조차도 깨끗하게 비워내는..현실. 여기나 저기나..똑같은..

저자의 용기있는 주장과 행동은 저에게도 우리에게도 한쪽켠에 묻어둔 양심에 불을 지피는 것 같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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