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생인 저자는 학교를 어떻게 하든지 빨리 졸업하고 어른의 세계에서 보란듯이 살고 싶었을겁니다. 그 이후 벌어지는 진짜 삶을 생생하고 처절한 마음으로 글을 썼고, 한권의 책으로 나왔습니다. ‘쇳밥’이라는 말이 주는 씁쓸한 맛, 불꽃이 주는 빛과 냄새가 나는 듯한 제목이 이 책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것 같습니다.
[일기장을 샀다. 맨 앞장에 허세 잔뜩 들어간 문구도 썼다. “일기란 개인의 역사다!” 막상 느낌표를 쓰고 나니 자학처럼 느껴졌다. 저 글귀대로라면 그간 내 역사는 숱한 외세의 침략을 받은 셈 아닌가. 그날부터 점심밥을 후루룩 휘몰아 먹고 공장 앞 야외 주차장으로 향했다. 어차피 낮잠 잘 공간도 없는 회사, 하루하루 일기 쓰는 습관 들이기에 아주 적합했다..(중략)..막상 내 이야기를 다시 쓰려니 참 낯간지러웠다. 어느 순간부터 나만을 위한 글은 아예 안 쓰다버릇했다. 타인에게 보일 글만 쓰다보니 표현을 절제하고 정제하는 능력만 늘었다.]
p212
‘쓰기’는 치유의 능력을 줍니다. 자기자신이 안드러날 수 없지요. 쓰다보면 더 깊이 생각이 되고, 다시 생각하게 되고, 느끼게 되고 다른 방식으로 나를,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생깁니다. 저자도 그러한 과정을 겪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공장 바닥 전전하며 보낸 이십대는 그저 통장에 찍힌 얄팍한 숫자 따위가 대표할 수 없다. 사회에서 ‘못 배운 놈년들’로 통칭당하며 냉소와 조소의 대상이 되었던 우리는, 자존감을 찌그러뜨리려는 온갖 압력에 저항한 결과, 삶의 형태에 고하 따윈 없다는 소중한 지혜를 얻었다. 헤어지는 길에 은주와 나는 약속했다. 다시 만날 땐 집, 차, 돈, 주식 따위 얘기밖에 남지 않은 멋없는 마흔 살이 되지 말자고.]
p246
저자는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졸업 축사를 하게 되는데 그 전문이 맨 마지막 부분에 나옵니다. 그 축사를 들은 졸업생들은 참 행운이라고 생각들더라구요. 학교밖은 불안한데 이미 겪어본 동년배의 사람이 현실감있는 조언을 해주니 참 고마운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쇠와 매연, 공장과 작업복의 회색 지대가 저의 세계였듯 여러분 역시 각자 자신의 세계가 있을 거예요. 저는 여러분이 자신의 세계를 부끄러워하지 않길 바랍니다. 오히려 더욱 더 선명하게 그 세계를 완성해나가길 바랍니다. 다만, 내 세계를 더욱 또렷하게 하기 위해선, 공부와는 약간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저 꾸준히 우직하게 정진해나가는 게 아니라 자신이 예전부터 관심 가던 분야 혹은 옳다고 생각하던 분야, 재밌다고 느꼈던 분야를 찾아 꾸준히 넓게 파고드는 게 중요해요. 까고 말해서 ‘덕질’하자는 거죠.]
p271
이 조언은 꼭 졸업생들에게만 적용되는 말은 아닙니다. 저에게도 적용되고, 이 글을 보는 여러분에게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이른 나이에 세상을 알게 된 저자의 꾹꾹 눌러 담은 말들이 저는 진정성있게 와닿았습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울컥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지만,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 그 뒷모습을 보는 것 같아 흐뭇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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