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인 “미셸 자우너”가 한국에 와서 공연도 하고 교보에서는 인터뷰를 유튜브로도 보여준다고 하니, 이 블로그를 빨리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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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태어나 한국계 어머니와의 한국적인 감성을 어릴 때부터 각인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우리 엄마들의 모습을 그대로 저자도 느끼면서 살아온거죠. 저자의 어머니는 56세에 암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에 대한 반추적 생각과 느낌을 하나도 허투루 안쓰겠다는 심정으로 디테일하게 담아내서 사실 무척 놀랐지요. 김치냄새와 된장냄새가 가득한 외딴 미국의 작은 마을의 어느 집. 어머니와의 공존을 통해 한국인의 뼛속 감성을 그대로 체득한 주인공. 전형적인 미국의 10대로서 혼혈이라는 이방인의 숲에서 헤매는 주인공. 혼자 감당해나간 여러가지 스토리를 통해 성장통을 한없이 끌어안아주는 기억들의 소환. 저도 무척이나 공감가는 대목들이 많아서 읽다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갑자기 화가 났다가 차분해지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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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어머니는 자기 수프에서 고깃조각들을 건져내 아들의 숟가락에 올려놓는다. 좀 피곤해 보이는 아들은 어머니에게 말도 별로 건네지 않고 조용히 앉아서 먹기만 한다. 그에게 내가 지금 얼마나 우리 엄마를 그리워하는지 아느냐고 말해 주고 싶다. 어머니한테 더 잘 대해드리라고, 삶은 허망해 어머니가 언제 훌쩍 떠나가버릴지 알 수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으시게 하라고, 혹시 지금 어머니의 몸안에 작은 종양이 자라고 있지는 않은지 반드시 확인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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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때 잘해. 쉬운 말인데 행동으로는 참 어렵습니다. 주인공은 어머니를 잃고 나서 H마트(한아름 마트)에서 있던 일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리고, 식당을 지나가면서 한 청년과 어머니의 장면을 보면서 애타는 마음을 보입니다. 먹거리를 통해 유대감과 연결감을 갖는 모녀지간. 매운 고추를 먹는 걸 보며 역시 내 딸! 이라며 박수를 쳐주고, 뭐라도 잘 먹으면 우쭈주해주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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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만 나에 대해서 하나도 몰라.” 내가 말했다. “그 이상한 짓거리가 바로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이라고.”
⠀”그래, 알았어. 그럼 가서 콜레트 아주머니하고 같이 살아!”
⠀엄마가 폭발했다..(중략)..”콜레트 아주머니가 널 아주 잘 거둬줄거다. 거기서 넌 네가 하고 싶은 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거고. 그래, 네 엄마는 완전 악마야.”]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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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한국 엄마들의 공포 샤우팅은 여기서도 있었구나. 저는 웃음이 나왔어요. 우리 엄마 18번, 니 엄마 찾으러 가라, 다리 밑에 있다! 그 말은 저에게 분노의 버튼을 눌렀었고, 밥숟가락을 내던지게 했었죠. 그 행동으로 엄마는 더 놀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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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우리가 좋게 헤어진 건 아니었지만 그대로 한 달에 한번씩 큰 상자가 내게 날아와, 엄마의 마음속에서는 내가 절대 멀리 떠나 있지 않음을 상기시켜주었다. 상자에는 달달한 쌀강정이며 스물 네 팩으로 낱개 포장된 김과 즉석밥, 새우깡과 빼빼로, 지긋지긋한 구내식당에 가지 않고 몇 주는 버틸 수 있게 해줄 신라면컵이 넉넉이 들어 있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중략)..카우보이 부츠는 부모님이 멕시코로 휴가 여행을 다녀오면서 사와 음식과 함께 내게 부쳐준 것이었다. 그걸 신어보는데 웬일인지 가죽이 이미 부드럽게 길들여져 있었다. 알고 보니 엄마가 그걸 일주일 동안 집안에서 신고 다녔다는 거다. 엄마는 양말을 두 겹 신은 발로 그걸 신고 매일 한 시간씩 걸어다니면서 뻣뻣한 신발 가장자리를 부드럽게 만들어놓고, 자기 발바닥으로 평평한 밑창까지 모양을 잡아놓았다.]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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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머니..어머니의 사랑은 이런 장면에서 마법처럼 피어나오지요. 저의 추억도 비슷하게 피어오르더라구요. 발이 시려워하는 저를 위해학교에서 신는 실내화를 아궁이에 가지런히 놓아 따뜻하게 해주시던 그 추억. 근데 실내화가 약간 탔던 추억.그으른 실내화를 신어야 한다는것에 무척이나 화가 났었죠. 당연히 엄마에게 무섭도록 화를 냈었죠. 이걸 신고 어떻게 학교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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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말로 내가 그동안 참고 참아온 눈물을 터뜨려도 될 때가 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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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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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너무도 익숙한 한국말. 내가 평생 들어온 그 다정한 속삭임. 어떤 아픔도 결국은 다 지나갈 거라고 내게 장담하는 말. 엄마는 죽어가면서도 나를 위로했다. 엄마의 모성이, 엄마가 느꼈을 테지만 능숙하게 숨겼을 무진장한 공포를 제압해 버린 것이다. 엄마는 무슨 일이든 어찌어찌 잘 풀릴 거라고 내게 말해줄 수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었다.]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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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낯익은 친구에게 의존해보기로 했다. 내가 힘들었을 때 된장찌개와 잣죽 만드는 법을 가르쳐준 유튜버 망치 여사에게. 일이 끝나고 나면 날마다 여사의 목록에서 새로운 요리법을 찾아 요리를 했다..(중략)..어떤 때는 내가 이미 만들어본 음식이 나오는 영상을 배경음악처럼 틀어놓고 손과 미뢰로 기억을 더듬어가며 요리를 했다.
내가 한 음식은 모두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각각의 향과 맛이 잠깐이나마 나를 멀쩡했던 우리집으로 데려다주었다.]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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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을 곪아터지게 놔둘 수는 없었다. 트라우마가 내 기억에 스며들어 그것을 망쳐버리고 쓸모없게 만들도록 방치할 수는 없었다. 그 기억은 어떻게든 내가 잘 돌봐야 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공유한 문화는 내 심장 속에, 내 유전자 속에 펄떡펄떡 살아 숨쉬고 있었다. 나는 그걸 잘 붙들고 키워 내 안에서 죽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했다. 엄마가 가르쳐준 교훈을, 내 안에, 내 일거수일투족에 엄마가 살아 있었다는 증거를 언젠가는 후대에 잘 전할 수 있도록. 나는 엄마의 유산이었다. 내가 엄마와 함께 있지 못한다면 내가 엄마가 되면 될 터였다.]
p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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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보다 더 한국사람의 진한 감정이 전해지는 듯 합니다. 영원한 것은 없겠지요. 그래서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거겠지요. 저는 이 책을 단숨에 읽으면서엄마께 연락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전화했고, 역시나 똑같은 주제의 방향으로 말이 흘러가서 일방적으로 듣게 되었지만, 예전보다는 여유있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서로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 자체를 감사히 여기며 끊었지요. 감사합니다. 엄마. 저도 언젠가는 엄마의 음식을 상기하면서 눈물이 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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